2008년 5월 26일 월요일

[신천지] 封じられた書物と啓示された証し

封じられた書物と啓示された証し

封じられた書物、啓示される事柄、啓示された事柄の真意とは何か?

● 啓示される驚くべき業
今の世の中には聖書の御言葉とは異なる「御霊を受けた、救われた、正統だ、異端だ」という言葉があり、それを使用している教団や神学博士及び牧師たちや教授が多数存在する。それらの人々や彼らの言動を神様が認知されるのか疑問である。 聖書の預言には「人の子が来るとき、地上に信仰が見られるであろうか」(ルカ18:8)と書かれ、黙示録になると、万国が惑わされ、倒れ、悪魔と結婚した淫行のぶどう酒で商売をし、それで富を得ると書かれてある。(黙17、18章)この時、私たちは聖書以外に何を信じればいいのか。
イザヤ29章9~14節には頭は覆われ、目は閉じられ、驚いている先見者と預言者が登場する。彼らには黙示(啓示)の本が封じられた本になっている。また、彼らは人の戒めで教え、教えられた人々であった為に、神様とは遠く離れ、異邦のような立場になった。このような現状の中で教えた牧師と教えられた聖徒が救われると言えるであろうか?この様に神様は驚くべき業を再び行うと約束された。
驚くべき業を再び行う時とはいつを指しているのだろうか。神様は先知者ハバククに黙示には定められたときがあると言われた(ハバ1:1、2:2~3)。では、誰が、どんな形でそれを成し遂げるのであろうか。選民が逆らって、異邦に捕まった時、神様はエゼキエル1~3章のように来られ、人の子に封じられた書物、まさしく巻物を開いて見せて、食べさせた。それから、エゼキエルに逆らって捕まったイスラエルに行き、神様の御言葉を代言し伝えると言われた。これは旧約の預言である。この黙示が実像に成し遂げられた時とはイエス様の時である。
イスラエルが悪魔の所属になり、ローマの支配下にあった時に神様はイエス様に来られ、イエス様は神様から御言葉を受けて逆らった民族イスラエルに行き、エゼキエル書の御言葉通りに伝えられた。(マタ15:24、1ヨハ2:1)これは旧約のイザヤ、ハバクク、エゼキエルでの預言が成し遂げたことを指す。

● 新約 : 封じられた書物(啓示録)
これまでみた旧約の封じられた黙示はイエス様が「全てが終わった」と言われたように(ヨハ19:30)全てが成し遂げられた。では、イエス様が新約で約束なさった神様の御手にある七つの封印で封じられた書物、黙示録はいつ、誰が、どのように成し遂げるのだろうか。
この書物はイエス様が受け取り(黙5:7)、その封印を解くたびに内側にも外側にも、書かれている書物の御言葉通りに実体が現れる。(黙6章、8:1~2)    イエス様は、開かれた書物を、御使いを通し食べさせ、竜の群れである七つの頭と十本の角(バビロン)に捕まっている選民の民族、国民、国語、王たちが食べた御言葉を伝えることを指示した。(黙10章)

ヨハネは書物(黙示録)である神様の御言葉と全章で見て聞いたことを全て伝えた。これは初臨のイエス様の時と同様である。(黙1:2)また、封じられた書物の記録通り、敵と戦って勝ち、収穫して12支派を創造したので(黙12章、7章)初臨のイエス様と同じだといえる。(ヨハ16:33、マタ19:28)
問題は天上天下に誰一人この巻物に対して開いて見るのにふさわしい者がいなかったことである。(黙5:3~4)この巻物を開く人も開かれた巻物を受け取って読み伝える人も、わずか一人であった。
今日の聖徒は人の戒めのみを教える牧師に従うべきなのか、原典である天から降りた誠の正統の啓示を教える牧師を捜して従うべきなのかを判断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して、一般聖徒に残るのか、約束された12支派所属になるのかを信仰的に判断する時期である。どちらが神様の御心通りなのかを分かることが必要だ。
天から降りて開かれた(黙10章)巻物。「啓示」と「人の戒め」、この二つの中でどちらかを選ばなければならない。つまり、聖書を持って、啓示について語る処と、人の戒めを語る処、両方行き、聞いて見て判断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ヨブ34:3~4)自分が知る「人の戒め」に合わないことで「啓示」を異端だとすることと、どちらが本当の異端であ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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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8일 일요일

[신천지] 三つのぶどう酒と三つの皮袋

本当に正しく知ろう。新天地

この内容は教会や聖徒の信仰知識のために共益的な目的で聖書を根拠として書いたものです。また、この内容は教会や聖徒たちの真信仰のため「あなたがたは、然り、然り、否、否と言いなさい」と仰せられたイエス様の御言葉(マタ5:37)を根本として書いたのです。

三つのぶどう酒と三つの皮袋

イエス様は古いぶどう酒と新しいぶどう酒、古い皮袋と新しい皮袋のことを比喩で仰ってくださった。(ルカ5:37~39)当時、この古いぶどう酒はモーセの律法で、律法を入れた古い皮袋は律法を心に入れて教えていた当時の祭司長である。そして新しいぶどう酒は旧約を成し遂げた実像と天の福音で、新しい皮袋は律法を入れていた祭司長ではなく、イエス様、または、イエス様が下さった天の福音を心に入れて教えていた弟子たちが新しい皮袋である。そして、当時の淫行のぶどう酒は聖なるエルサレムの聖殿に立っていた蛇、すなわちパリサイ人の祭司長の話す言葉である。

あれから約2千年が経った今日の古いぶどう酒と新しいぶどう酒、古い皮袋と新しい皮袋は各々、どのような意味が含まれているのか。
再臨の時にはイエス様が旧約を成し遂げたことを福音で伝えたのが古いぶどう酒で、旧約を成し遂げた福音を入れて伝える牧師たちが古い皮袋である。年を経て古びたものは、やがて消えていく。(ヘブ8:13)そして今日の新約を成し遂げた啓示の御言葉が新しいぶどう酒で、この新しいぶどう酒を心に入れて教える12支派の祭司長たちが新しい皮袋である。律法と天の福音と隠れたマナは各々その時代の「時に応じてそなえてくれる食物」で、これを持っている人がその時代の皮袋である。

これとは別に今日の黙示録で船を持っている商人たちが富を得、酒で万国を惑わして倒し、地の王達と地に住んでいる人々が飲んで酔っ払ったと言う淫行のぶどう酒は何であるのか。ぶどう酒はぶどうから出て、ぶどうはぶどうの木から出る。御霊が来られていたイエス様が誠のぶどうの木で(ヨハ15:1)、誠のぶどう酒は御霊が下さるイエス様の御言葉である。
反対に、悪霊が来た異邦のぶどうの木は野葡萄で異邦の牧師。野ぶどうの木から出るぶどう酒は申命記32章に「蛇の毒のよう、まむしの恐ろしい毒のようである」であると書かれている。イエス様がパリサイ人の祭司長たちを蛇だと仰ることで(マタ23章)、彼らが野ぶどうで善悪の木だ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このように今日、黙示録13章の天の幕屋を襲った獣、竜の群れが淫行のぶどう酒で万国を惑わして、黙示録13章で彼らの正体が分かる。淫行のぶどう酒はサタンの牧師がくれる非真理で、皮袋はサタンの牧師である。主の御名で牧師になった人が悪魔と交際したことがまさに淫行で、サタンのはなす言葉がまさに淫行のぶどう酒なのだ。黙示録の実態を見た者がその酒とその皮袋の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こうして、啓示の御言葉とその実態を見て聞いた人から教えてもらわなければ、善と悪、善人と悪人の区分することは出来ない。
御霊が来られた木と悪霊が来た木(マタ13:31~32、ダニ4:20)、この二つの木は命の木と善悪の木で、二つ種類の牧師のこと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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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포도주와 세 가지 부대

진짜 바로알자 성경과 신천지

이 글의 내용은 교회들과 성도들의 신앙 지식을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성경에 입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 내용들은 교회들과 성도들의 참 신앙을 위해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 5:37)에 입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세 가지 포도주와 세 가지 부대

예수께서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와 새 부대를 비유로 말씀하셨다(눅 5:37-39). 당시 묵은 포도주는 모세 율법이었고, 율법을 담은 낡은 부대는 율법을 마음에 담아 가르치는 당시의 제사장이었다. 그리고 새 포도주는 구약을 이룬 실상과 하늘의 복음이었으며, 새 부대는 율법을 담은 제사장이 아닌, 예수님과 또 예수께서 주신 하늘 복음을 마음에 담아 가르친 제자들이 새 부대였다. 그리고 당시의 음행의 포도주는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에 선 뱀 곧 바리새인의 제사장이 주는 말이었다.

그 때로부터 약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 낡은 부대와 새 부대는 어떤 것인가?
재림 때는 예수께서 구약을 이룬 것을 복음으로 전한 것이 묵은 포도주요, 구약을 이룬 복음을 담아 전하는 목자들은 낡은 부대이다.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다(히 8:13). 그리고 오늘날 신약을 이룬 계시의 말씀이 새 포도주요(계 10장), 이 새 포도주를 마음에 담아 가르치는 12지파 제사장들이 새 부대이다. 율법과 하늘 복음과 감추었던 만나는 각각 그 시대의 ‘때를 따라 주는 양식’이며, 이를 담은 사람이 그 시대의 부대이다.

이와는 달리, 오늘날 계시록에 바다에서 배 부리는 상고(商賈 : 상인)들이 치부한 술로 만국을 미혹했고 무너뜨렸다 하고(계 18장), 또 땅의 임금들과 땅에 거한 자들이 먹고 취했다(계 17:1-2)고 하는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인가?
포도주는 포도에서 나고 포도는 포도나무에서 난다. 성령이 임한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이며(요 15:1), 참 포도주는 성령이 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반대로, 악령이 임한 이방 포도나무는 들포도나무이고 이방 목자이다. 들포도나무의 포도주는 신명기 32장에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제사장들을 뱀이라고 하였으니(마 23장), 이들이 들포도나무이며 선악과 나무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 계시록 13장의 하늘 장막에 침노한 짐승 용의 무리가 음행의 포도주로 만국을 미혹하고 취하게 하였으니, 계시록 13장에서 그들의 정체를 알 수가 있다. 음행의 포도주는 사단의 목자가 주는 비진리요, 부대는 사단의 목자이다. 주의 이름으로 목자가 된 자가 마귀 신랑과 교제한 것이 곧 음행(淫行)이요, 사단이 주는 말이 곧 음행의 포도주이다. 계시록의 실체들을 본 자가 그 술과 그 부대를 잘 알고 있다. 이러므로 계시의 말씀과 그 실체를 보고 들은 자에게 배워야만 선과 악,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을 구분할 수 있다. 성령이 임한 나무와 악령이 임한 나무(마 13:31-32, 단 4:20-22), 이 두 가지 나무는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이며, 또 두 부류의 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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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일 금요일

[신천지] 주의 계명, 믿음과 행함

本当に正しく知ろう。新天地

この内容は教会や聖徒の信仰知識のために共益的な目的で聖書を根拠として書いたものです。また、この内容は教会や聖徒たちの真信仰のため「あなたがたは、然り、然り、否、否と言いなさい」と仰せられたイエス様の御言葉(マタ5:37)を根本として書いたのです。

主の戒め、信仰と行い

神は愛である。(1ヨハ4:16) 審判は自分の行いによって書物に書かれてある通り受ける。(啓20:12)
 
神様は罪人たちを愛してひとり子を賜った。(ヨハ3:16)息子のイエス様は罪人たちの友達で、罪人のために代わりに十字架につけられた。(マタ9:10~13)
「あなたはそこの立って、わたしに近づいてはならない。わたしはあなたと区別されたものだから」と言った人に神様は「黙っていないで報い返す」と仰せられた。(イザ65:5~6)イエス様は「敵を愛し、敵が飢えていると糧を与えなさい」と仰った。(マタ5章)
 神様とイエス様を信じる私たちは神様のように、イエス様のようにその約束を守る人が正しく信じる人だと思う。口では信じると言っているけど、その行いが主の戒めと合わないのなら、信じる人ではないのだ。
 主が禁じた迫害や批判、数え、殺人、呪いに明け暮れているゼミなんかが本当に主の御心だと思うのか?1990年以来、キリスト教世界は迫害したせいでキリスト人の約三分の一の数が減ったことを何故気づいてないのか。それは新興宗教のせいなのか。新興宗教もキリスト教で、イエス様のことを信じる所だし、そもそも以前の教会が腐っているから新興宗教が出来たのではないのか?
 もし、新興宗教が異端だったら、改新教もカソリックに戻るべきで、カソリックもユダヤ教に戻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のか?誰でも善行で神様とイエス様の仰った契約を守って、信じて、従順する者は教団と関係なくキリスト人になるのだ。(ヨハ1:12~13)
キリストの御霊のいない人はキリスト人ではないし、主の戒めを守らない人はキリスト人ではない(ローマ8:9~11)からである。迫害をし、呪うのより命の御言葉を教え、信じるようにし、お互い許しあい、愛する人が神様の御心通り行う人である。(1ヨハ4章)
キリスト教は一つにならなければいけないし、約束の御言葉を信じ、御言葉の中に入らなければならない。

 キリスト人同士で戦ったり、呪うことがなくなるとキリスト教は復興が出来、世の光になれる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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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말씀]믿고 순종하고 낮아지는 신앙

진짜 바로알자 성경과 신천지

이 글의 내용은 교회들과 성도들의 신앙 지식을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성경에 입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 내용들은 교회들과 성도들의 참 신앙을 위해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 5:37)에 입각하여 기록한 것이다.

믿고 순종하고 낮아지는 신앙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 자기 행위에 따라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다(계 20:12).

예수님은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것이라 하셨고, 말석에 앉으라고 하셨다(눅 14:10-11).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 14:12-15)은 뭇 별 위에 보좌를 베풀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였고 에덴 동산의 천사장 그룹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다(겔 28장). 이는 하나님의 계명과는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행위로서 역적 행동이다. 오늘날 신앙 세계에서 (돈을 주고 목사 자격증을 사고, 신학 박사 학위를 돈을 주고 사며,) 노회장, 총회장이 되고자 돈을 쓰고 로비를 하며 교권을 잡고자 한다면, 이 어찌 예수의 계명을 믿고 지키는 신앙인이라 하겠는가? 이 어찌 낮아지는 자라 하겠는가? 목자가 높아지기 위해 로비에 돈을 쓴다면, 거기에 쓴 것이 어찌 자기 돈이겠는가? 참으로 예수님의 계명의 말씀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돈을 남용하면서까지 높아지는 교권에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심판 때에는 누구나 자기 행위가 거울같이 드러난다. 육적 이스라엘이 주의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소망에 들어가지 못했다(히 3-4장). 이제 우리는 믿고 순종하자. 그리고 핍박하는 곳에서 핍박받는 곳으로 가는 것이 곧 구원의 방주를 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이다(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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